2009. 11. 25. 15:57ㆍ세상을 보는 눈
죽음이 시작된 그 곳에서 삶이 노래하니...
윤석원의 사진은 한 마디로 말해 물고기를 찍은 사진이다. 이보다 더 간략하고 명확하게 그의 사진을 요약해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그는 사람도 꽃도 아니고,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볼 수 있는 꽁치, 갈치, 고등어, 문어 등 물고기를 찍는다. 그것도 2005년 이후부터 줄기차게. 하지만 그 이외의 것에 대해서 그의 작품은 명확한 언어의 설명을 피해간다. 어떤 개념이나해석의 언어를 덧붙이려고 해봤자 궁색하고 어설픈 단어와 이야기만 나열될 뿐이다. 그의 작품이 난해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불가해함과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바로 이 모호함이 작품을 그럴듯하게 하나의 의미로 해석해 내려는 의지를 계속 무화시킨다. 데리다의 표현을 빌자면 의미의 계속적인 차연이며 미끄러짐이다. 수잔 손탁의 말을 조금 틀어 보자면 작품이 스스로 해석에 반대하고 있는 듯하다. 실패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바라보기만을 허락하는 그의 작품을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별다른 뾰족한 수는 없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풀숲에 물고기가 있다. 분명, 바다나 강ㆍ개울 등 물과 함께 있어야 할 물고기가 진흙, 풀 위에 놓여 있다. 온몸을 그대로 드러낸 채, 꼬리가 휘어진 채, 머리를 가린 채로 아니면 살점이 온통 뜯겨 앙상한 가시만을 드러낸 채 말이다. 물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들은 모두 죽었거나 혹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일 것이다. 살점이 썩어 문드러진 것도 있으니 물을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은 아름답다. 은회색 갈치의 몸은 매끈하고 부드러워 보인다. 차 유리창에 비친 하늘을 물 삼아 유영하는 물고기의 배는 햇빛에 반짝인다. 죽음과 마주한 물고기들은 어떤 살아있는 것들보다 매혹적이다. 물을 떠난 물고기ㆍ눈부시게 아름다운 사체(死體), 서로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두 가지가 윤석원 작품 속에 동시에 보인다. 격렬하게 대립하거나 충돌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어우러져서 말이다. 여기에 윤석원 작품의 비밀스런 문을 여는 열쇠가 있다. 물고기를 물과 유리시켜 숲 속으로 스튜디오로 도시 한복판으로 데려와 사진에 담은 그의 작품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의외성이나 우연적 만남에서 오는 신선함과 일말의 신비로움이 배어나온다. 앙드레 마송이 자동기술법으로 그렸던 그림이나 르네 마그리뜨가 서로 다른 것을 결합하여 그린 그림 같은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말이다.특정 이론이나 방식ㆍ하나의 이야기보다 무의식, 꿈, 상상의 흐름을 따라 표현된 작품들은 선과 색ㆍ형태 그리고 전체적인 뉘앙스ㆍ느낌이, 정확하고 단일한 어떤 해석이나 설명을 넘어선다. 윤석원의 작품도 이와 닮아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토대로 다시 물음을 던져본다. 왜 물고기인가? 그에게 물고기는 무엇인가? 윤석원은 물고기에서 사람의 모습을 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물고기는 인간 존재 자체이기도 하면서 자기 자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물에서 나와 죽음을 맞이한 물고기는 이중적인 것 사이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 계속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이는 관객과 작품, 좋음과 나쁨, 작가의 내적 고민과 작품의 외현, 나와 타인, 감성과 이성 등 두 가지 사이의 관계와 소통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닮아 있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과연 처한 환경과 상황에서 타인과 좋은 소통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물고기처럼 인간도 떠나온 태초의 어느 곳이 있지 않을까? 있다면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 그곳이 던져주는 느낌은 아쉬움과 향수만일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물고기가 건네는 말은 과연 괴롭다는 비명뿐일까? 등의 질문을 던지는 그의 작품은 이 모든 물음의 답을 계속 지연시킨다. 인간은 계속 성장하며 변한다. 생김새도 변하고 사고도 변하는 한 개인이 찍는 사진 또한 변한다. 똑같은 물고기를 찍는다 하더라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개인이 찍은 사진은 매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윤석원의 물고기 사진 찍기는 계속 진행 중이며 그 끝을 모르는 여정이다. 물고기에서 인간의 모습을 보며, 물고기에 뷰파인더를 갖다 대면서,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이면서 그는 계속 세계와 타인 그리고 자기 자신과 소통을 시도할 것이다. 그 와중에 모든 궁금증과 물음은 서서히 그 베일을 벗을 것이다. 작가나 관객, 비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작품 스스로 그 비밀스런 속내를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명확하고 개념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긴 인생의 터널 끝에서 조금씩 들어오는 빛이 던지는 갈증, 환희, 그리움, 고독과 같이 어떤 느낌으로 감지할 수 있는 그런 세계일 것이다. 죽은 물고기를 통해 산 사람과의 소통을 꿈꾸는 윤석원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몫은 그 비밀스럽고 신비한 세계의 문이 열리기를 끈덕지게 기다리는 것뿐이다.
글/ 노은정 (전시 기획자 / 큐레이터)
Fish series -Ⅲ - "Consolation"
투박한 카메라들이 나와 스킨쉽(skinship)을 한다.
축축하게 구겨진 내 옷들을 쓰다듬어 다리시는
어머니의 손이 되기도 하고,
깍지 긴 손을 내 겨드랑이에 넣어 일으키는
현(兄)의 손이 되기도 한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나는 이들의 마음을 덮는 처음의 손이 되어 얹어지면 좋겠다.
글/ 윤석원
윤석원
2005. 9 Human Being 물고기 시리즈 (김영섭 사진화랑, 서울)
2005. 10 Human Being 물고기 시리즈 (덕원갤러리, 서울)
2008. 5 물고기 시리즈 (김영섭 사진화랑, 서울)
2009. 5 Consolation 물고기 시리즈 (갤러리 큐브 C, 대구)
2009. 7 물고기 시리즈 (경향갤러리, 서울)
단체전
2005. 2 헤이리건축사진전 (MOA 갤러리, 파주 헤이리)
2006. 2 두산 뉴아티스트 페스티발 사진부문 (두산아트센터, 대구)
2007. 3 중국천진예술대학 교류전 (천진예술대학, 중국 천진)
2007. 11 Re"Look, See, Watch 를 중심으로” (극재미술관, 대구)
2008. 3 “Photography. Dream or fiction" 기획전 (갤러리 룩스, 서울)
2009. 7 대구화랑협회展 (봉산문화회관, 대구)
2009. 8 조선일보 Asyaaf (구 기무사, 서울)
Art Fair & Biennale
2008. 9 중국 재남 현대국제사진비엔날레 (중국 지난, 중국)
2009. 3 서울포토페어 2009 (COEX 인도양홀, 서울)
Collection
한미사진미술관, 경향신문사
'세상을 보는 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년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0) | 2009.12.10 |
---|---|
시선_소통으로 사진하기 사진전시회 (0) | 2009.12.02 |
갤러리 카페<포토텔링> 허정환작가의 순환_사진전시회 (0) | 2009.10.20 |
갤러리 카페<포토텔링> 장현웅, 장희엽의 사소한 발견_폴라로이드 사진전시회 (0) | 2009.09.04 |
안가영의 첫 번째 개인전_Dream series_사진전시회 (0) | 2009.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