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21. 13:32ㆍ세상을 보는 눈
폐허의 공간 혹은 성찬의 공간
탈무드에는 이런 우화가 있다. 한 학생이 랍비에게 물었다. 왜 우리는 금요일 밤마다 향연(Sabbat)을 베푸는 건가요? 랍비는 잠시 생각하다가 얘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옛날에착하고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그런데 그만 못된 마술에 걸려서 공주는 어느 먼 마을로 유배를 당했다. 그 마을은 말이 통하지 않는 마을이었다. 공주는 침묵 속에서 매일 매일 슬프고 외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는 먼 소식을 들었다. 그건 사랑하는 왕자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마을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녀는 기쁜 마음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 큰 성찬을 준비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초대했다...
프레임 공간은 열린 공간이다. 그 안에는 무엇이든 담길 수가 있다. 보도 사진에는 사건이 담기고 다큐 사진에는 기록이 담긴다. 광고 사진에는 시장이 담기고 인물 사진에는 기억이 담긴다. 그렇다면 김안식의 프레임 공간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여러 번 포토폴리오를 넘겨 보고난 뒤에 나는 ‘마음’이라는 단어와 만났다. 이들의 프레임 공간 안에는 그러니까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사진 공간을 누군가에 마음 공간으로 바라보는 일은 그 사진의 독해를 각별히 힘들게 만든다. 마음은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것이니까. 또 마음은 한 겹이 아니라 여러 겹의 무늬를 지니는 중층적인 것이니까. 김안식의 경우도 다른지 않다. 김안식의 사진 안에는 그녀만의 비밀스러운 마음이 담겨 있고 그 마음은 여러 겹의 무늬들로 짜여 있다. 그 마음의 무늬들은 어떤 이미지들로 직조되어 있을까? 그리고 그 이미지의 무늬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김안식의 사진 공간 안에서 나는 마음의 세 얼굴과 만난다. 우선 헐벗은 마음의 얼굴이 있다. 마음의 헐벗은 얼굴은, 사진의 폐허 이미지들을 통해서 드러난다. 금가고 벗겨진 회벽, 찢어진 문, 버려진 침대, 먼저 앉은 욕조...
폐기된 오브제들로 가득한 사진공간은 무엇보다 폐허 공간이다.
그러나 그 폐허의 공간은 동시에 그녀가 응시하는 자신의 마음 공간이기도 하다. 아마도 어느 날 우연히 김안식은 빈집의 버려진 공간과 마주 쳤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헐벗은 풍경 안에서 자신의 마음 풍경과 만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폐허의 공간 앞에서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던 마음의 풍경과 만나는 일이 그녀만의 경험일까? 김안식의 사진 풍경은 어둡고 멜랑콜리 하지만 어쩐지 친숙하다. 그 친숙함은 누구나 알고 있는 저마다의 헐벗은 마음 풍경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만나는 얼굴은 ‘치유하는 마음’의 얼굴이다. 김안식의 사진 공간은 폐허 공간이지만 그 폐허 공간은 더 이상 버려지고 방치된 공간이 아니다. 김안식은 폐허를 떠나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선다. 맨 몸의 마네킹에게 옷을 입히고 버려진 식탁 위에 붉은 포도주를 노아주고, 퇴색한 벽 위에 꽃 그림을 얹어주고, 삭막한 욕조 안에 촛불을 밝히면서 폐허의 헐벗은 공간 위에 풍경을 연출한다. 하지만 그러한 연출을 통해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건 다만 사진 이미지의 변화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진 공간의 변주 안에서 가 만나는 건 그 연출을 조심스러움과 부드러움이다.
김안식은 폐허의 공간을 자의적이고 인위적으로 개조하려ㅕ 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만 그 공간 곳곳에 질서 없이 버려진 사물들에게 질서를 선물하려고 한다. 헤어진 것을 모으고 맺어주고 순서를 바꾸어 주면서 그녀는 버려지고 상처 받은 사물들을 치유하려고 하려고 한다. 그녀의 폐허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어떤 따스함과 부드러움은 다름 아닌 이 조심스러운 치유의 손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다리는 마음’의 얼굴이 있다. 폐허 공간은 치유의 공간으로 바뀌지만 그러나 김안식의 사진공간이 모든 것들이 치유된 완성의 공간은 아니다. 그녀의 사진 공간은 오히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미완성의 공간 또는 부재의 공간이다. 그 부재의 빈자리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빈자리다. 예컨대 잘 정리되어 베개 두 개가 나란히 놓인 침대와 요는 신혼의 축복을 은유하지만 신혼부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탁자 위엔 놓인 두 잔의 와인 글래스는 어떤 만남을 은유하지만 의자는 사라지고 없다. 김안식의 사물들은 그녀의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에 의해서 잃어버린 관계를 선물 받지만 그러나 그 관계는 아직 은유의 영역에 머물 뿐이다. 또 하나의 빈자리는 인적의 부재이다. 김안식의 사진 공간 안에는 그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이 없다. 유일하게 사람을 상징하는 마네킹조차 아직 얼굴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사물들 사이의 빈자리와 인적의 부재를 안에 품은 사진 공간이 보는 이에게 상실과 회환의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다. 그녀가 조심스러운 치유의 손길로 비워 놓은 부재의 공간들은 오히려 그 빈자리를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공간으로 바뀌어 놓는다. 다시 말해 김안식의 사진 공간은 그 빈자리에 의해서 누군가가 이미 떠나버린 공간이 아니라 이제 찾아 올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 정성스레 준비된 기대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김안식은 폐허의 공간을 치유의 공간으로 바꾸고 치유의 공간을 준비된 공간으로 바꾸면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녀는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정성스런 손길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그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녀의 비밀스러운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나는 그 비밀스러운 마음을 쉽게 짐작하지 못한다. 다만 탈무드의 우화를 마지막까지 전할 수 있을 뿐이다:...랍비의 얘기를 듣고 학생이 물었다. 왕자는 누구입니까? 기쁜 소식이다. 공주는 누군입니까? 기쁜 마음이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건 기쁜 마음의 성찬으로 초대 받은 우리들이다.
김진영(예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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